23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선 윤수일의 ‘아파트’에 맞춰 개사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인파 사이에서 만난 고등학생 박서영양(18)은 부모님과 함께 ‘국정농단 윤석열 OUT’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박양은 “친구의 친구가 이태원 참사 때 사고를 당했다”며 “나라가 사과하지 않고 시민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모습을 보며 ‘이러면 안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주 수능을 마치자마자 집회에 나오고 싶었다는 박양은 이날 가족들과 행진까지 함께 했다.
이날 광화문 사직로 일대는 촛불을 들고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로 북적였다. 참여연대·전국민중행동 등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거부권을 거부하는 전국비상행동’은 오후 6시부터 ‘윤석열을 거부한다 2차 시민행진’을 열었다. 참가자 대부분은 같은 장소에서 30분 전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주최 집회에 참가한 뒤 곧바로 이어진 시민행진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전국비상행동은 이날 집회에 10만명(경찰 추산 9000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윤석열은 퇴진하라’ ‘민주주의 짓밟는 윤석열을 거부한다’ 등 구호를 외쳤다.
집회에서는 윤 대통령이 행사해 온 재의요구권(거부권)에 대한 규탄과 김 여사·채상병 특검 촉구가 이어졌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지난주 군검찰의 박정훈 대령 구형은 채상병 사망사건의 진실을 틀어막기 위한 입틀막 구형이었다”라며 “박 대령의 무죄 선고는 대통령 윤석열의 직무상 위법행위를 입증할 제1호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망원시장에서 두부 장사를 하는 김진철씨는 무대에 올라 “자영업자 100만 폐업시대를 맞이했지만 윤석열 정부의 소상공인 정책을 보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 정부는 납득 가능한 해명 없이 정치적 이유로 소상공인이 간절히 바라는 정책들을 외면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공정과 상식에 어긋나는 거부권을 남발하면 시민들이 대통령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있을 때까지 계속 집회에 나오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경기 연천에서 온 홍모씨(56)는 “대통령이 공적 책무를 저버리고 자기 실속만 챙기고 있다”며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책임감에 집회에 나왔다. 대통령이 바뀌고 다른 대책을 가져올 때까지 계속해서 집회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용인에서 두 딸과 함께 온 권주상씨는 “국정운영을 할 수 없다는 검증이 이미 끝났는데 대통령은 내려오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며 ”평화로운 탄핵을 위해 국민들, 특히 가족들이 함께 움직여야 할 때라고 생각해 광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권씨는 ”8년 전 촛불집회 때의 데자뷔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며 ”국민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기 때문에 원하는 바가 이뤄질 때까지 앞으로는 매주 집회에 나올 것“이라고 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지하철 3호선 안국역 방향에서 명동까지 행진을 이어갔다. 행진은 오후 8시20분쯤 별다른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대학생 딸과 함께 행진한 백옥경씨(55)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행진 대열에 머리 하나라도 더하고 싶어서 절박한 심정으로 나왔다”며 “국민들의 뜻이 이렇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