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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심칼럼)그 어머니에 그 아들

기자명 : 오양심 입력시간 : 2015-10-27 (화) 15:36

(칼럼)
 
그 어머니에 그 아들


편집주간 오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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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방송연합뉴스]
2015년 10월 26일은 안중근이 이국땅에서 풍찬노숙을 하며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지 106주년이 되는 날이다. 안중근은 러시아 하얼빈 역에서 권총으로 이토 히로부미에게 세 발의 총탄을 명중시켰다. 첫 발은 앞가슴에, 제2탄은 옆 가슴에, 세 번째는 배를 관통시켜 그 자리에서 숨지게 했다. 그때 러시아 헌병들이 안중근을 덮쳤다. 하지만 안중근은 '코레아우라! (대한만세)' 라고 외친 뒤 순순히 체포 됐다. 그의 나이 불과 30세였다.


일본 총영사관 지하실에 갇힌 안중근 의사는 미조 부치 검찰관 앞에서 ‘나는 대한의병 참모중장으로서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적장을 총살, 응징했다. 첫째, 한국의 명성황후(明星皇后)를 죽인 죄, 두 번째, 고종황제(高宗皇帝)를 왕의 자리에서 내친 죄, 또한 을사조약(5조약)과 한일신협약(7조약)을 강제로 맺은 죄, 독립을 요구하는 죄 없는 한국인들을 마구 죽인 죄, 정권을 강제로 빼앗아 통감 정치 체제로 바꾼 죄,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하여 경제를 혼란에 빠뜨린 죄, 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킨 죄, 민족 교육을 방해한 죄,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키고 한국을 식민지로 만든 죄, 한국사를 없애고 교과서를 모두 빼앗아 불태워 버린 죄’등을 논리정연하게 짚어나갔다.


여순 지방 법원의 재판정에서는 안중근이 해외에 오게 된 목적부터 물었다. 안중근은 교육을 통해 한국 사람들을 깨우쳐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안중근은 누대로 이어진 재산의 대부분을 교육 사업에 투자했다. 학생들에게 신식 군사교련도 가르쳤다. 우리나라가 자주독립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서양의 나라들을 알아야 한다는 신념에서 영어도 가르쳤다. 비록 학생 수는 50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천주교 신자들을 교육하던 돈의 학교도 인수했다. 중등수준의 야학교인 삼흥 학교도 설립하여 청년들을 모아 민족교육기관으로 육성했던 것이다.


감옥에서 지낸 안중근은 1910년 2월 14일 마지막 공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었다. 그때 안중근은 항소를 하지 않았다. 안중근의 어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아들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급히 두 아들을 여순 감옥으로 보냈다. ‘옳은 일을 하고 받는 사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라고 말했다는 어머니의 뜻을 전했다. 한국의 대한 매일 신보와 일본의 아사히신문에는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안중근 의사는 오직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교육으로 새로운 시대가 오기를 열망했다. 안중근 같은 조상님들의 덕분으로 조국이 광복되었다고는 하나 70년이 되도록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라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교육이 흔들릴 때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조상님들의 얼을 본받아야 한다. 죽음을 앞둔 아들일망정 어미에 대한 효도가 무엇인지 단호하게 가르칠 수 있는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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