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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애도

기자명 : 배상현 입력시간 : 2015-11-23 (월)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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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방송연합뉴스]

 

22일 새벽 김영삼 前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영삼 前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하고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정부는 관련법과 유족의 뜻을 살펴 예우를 갖춰 장례를 준비할 것이라며, 유가족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거듭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김영삼(金泳三·YS) 전 대통령은 군부독재에 맞서 투사로써 보낸 전반기와 3당 합당 이후 보수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살아왔다. 그가 1993년 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이름 붙여진 '문민(文民)정부'는 민주화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말처럼 쓰였다.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하나회 해체와 금융실명제가 있으며 특유의 강단있는 성격으로  "내가 하나회를 해체하지 않았다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문민화'를 자신의 가장 큰 업적으로 치기도 했다. 금융실명제는 1993년 8월 대통령 특별담화 형식으로 단행됐다. 그의 재임 초기 개혁 조치는 부동산 거래 실명제, 지방자치 선거 실시 등으로 이어지면서 취임 초 국정 지지도가 90%를 넘어서는 등 국민적 인기가 크게 올라갔다.

 

임기 중반에는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자금사건으로 법정앞에 세워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분으로 구속시켰다. 또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1980년 쿠데타에 가담했던 신군부 인사들을 검찰이 기소하지 않자,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해 전원을 법정에 세웠다. '4·19의거'를 '4·19혁명'으로 격상했고, '12·12'에 대해서는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임기 말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뼈저린 실패를 맛봤고 아들 김현철이 구속되는등 내우외환을 겪었다. 결정적으로 대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IMF사태를 초래하여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막을 내렸다.

 

명암이 뚜렷한 대통령이지만 분명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한발 앞당겼다는 점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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